어릴때 칠곡 매천동에 큰고모가 사셨다
아버지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 잘모르겠다
아마 여동생이었지싶다
고모가 세분이셨는데 큰고모는 칠곡 매천동에.
둘째 고모는 충청도로 시집가셨다 들었고,,
그래서 충청도 고모라고했다
멀리 시집을 가서 잘 못봤는데 어릴적 기억엔
충청도 말을 쓰셨던 기억이난다
경상도에서 컸는데 왜 충청도 말을 썼는지 모르겠다ㅎ
아마 아주 어릴때 시집을 갔던가보다
하튼 충청도 고모는 자주 못봤다 거의 못봤다
세째 고모는 일본에 가서 사셨는데
거의 못보다시피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셨을때 왔던 기억이난다
나한테 말을 다정하게 안해서 싫었던 기억이난다
큰고모는 잘해주셨는데
어릴때 그래서 큰고모집에 자주 갔었다
큰고모댁이 두군데였는데 비산동에 집이 있었고,,
큰집이랑 가까웠음
그래서 큰집이랑 두군데를 다니느라 나름 바빴다ㅎ
그리고 칠곡 매천동에도 집이 있었는데 거기선
농사를 지으셨다
우리집에서 출발하면 십리길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심심하면 큰고모집에 간다고 갔던 기억이난다
십리길 지루하니까 칡을 씹으면서 갔던 기억이난다
당시엔 먹을게 없어서 칡을 자주 먹었던 기억이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면서 약간 쓴맛도 났던 그게 왜그렇게 맛있던지,,
그렇게 십리길을 걸어 큰고모집에 당도하면,,,
언니와 오빠들이 동생왔다고 반겨주면서 밭에 데려가서
어린무를 뽑아서 먹으라고 줬는데 그건 또 왜그렇게 맛있던지,,
먹을게 참 없던 시절이었던갑다
그렇게 큰고모댁에서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을 받으면서
하룻밤씩 자고도 오곤했는데
집에선 동생이 있어 귀염을 못받다가 거기선 막내라고
이쁨을 받다보니 그 재미로 가곤했던가보다
큰고모댁은 알부자라고 소문이 났었는데
한때는 목욕탕도 운영하시고,,
하튼 부자라고 어른들이 얘기하던걸 들은 기억이난다
그뒤 엄마한테서 간간히 소식을 들은뒤론 큰고모네가 어찌됐는지 잘모르겠다
엄마가 나와 동생을 끌고 이리저리로 옮겨다니셔서
고향과는 멀어지는 바람에,,,고향 친척들의 소식은 잘모르게됐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는 친가쪽보다는 외가쪽이랑
더가깝게 지내셨던거 같은데,,,
아마 친가는 좀 어렵고 외가가 편해서였던게 아닌가싶지만
허나 난 친가쪽이 좋았다
외가쪽 사람들은,,,정이 별로 안갔다
별로 잘해주질 않았다 ㅜㅜ
그리고 가난했다 ㅜㅜ
이모는 맨날 혼만 내시고 외삼촌들은 구경도 못하고,,ㅜㅜ
외삼촌이 두분인가 있다고 들었는데
일본에서 사셔서 거기다 연락이 끊겨서 한번도 못봤다
엄마가 막내라서 형제를 많이 그리워하셨는데
형제들도 아마 그랬겠지
큰외삼촌과 아버지는 소학교 동창이라 들었다
엄마는 인물도 좋으시고 그래서 아마 자랄때 이쁨을 많이 받았지싶은데
그런데 가족과 연락이 끊겨버렸으니 얼마나 그리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튼 막내라서 우리엄마는 좀 덤벙대셨다
막내기질이 그대로 남아있는거처럼 보임
아쉬운건,,
우리엄마가 좀더 현명하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나도 안현명하다
현명하기가 말처럼 쉽지않다
그게 쉽다면 다들 잘살겠지